일기

묻어둔 기억

서희정 2018. 2. 18. 01:05

미성년자 성추행 시, 공소시효는 성인이 되고 난 후 10년이라고 한다.


나는 같은 친척 오빠에게 두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인가 중학교때, 6촌 정도되는 고모집에 4일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집에는 나랑, 나보다 6살 많은 오빠 둘이 한 집에 있었다. 몸장난을 치던 중간에 오빠는 내 성기 위에 자신의 성기를 갖다대는 행위를 했다. 내가 어떻게 거기에 대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몸을 치워서 그 상황에서 나왔겠지. 두 번째는 고등학교때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있던 고모 가게에서 엄마와 함께 밥을 먹고 맥주 한 잔을 했다. 그때 그 가게에 일을 도와주겠다고 친척 오빠가 와서 지내고 있었다. 엄마와 고모의 수다가 길어지고 나는 피곤해서 사촌 언니방에 가서 자고 있었다. 엄마는 잠든 나를 깨우지 않고, 집으로 가셨다. 고모는 엄마를 바래다 주러 간 사이, 내가 자고 있던 방에 친척오빠가 들어왔다. 그리고 급하게 내 속옷에 손을 집어 넣었다. 내 성기를 만지려고 했고, 나는 너무 놀랐고 무서웠지만 잠든 척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기가 손에 닿지 않도록 자세를 취하고 있는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내가 잠이 깨는 듯이 소리를 냈지만, 친척 오빠는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곧 고모가 돌아왔고, 오빠는 방을 나갔다.


이 기억은 아직까지 너무 생생하다. 이렇게 나를 성추행했던 친척 오빠는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고 매일 같이 딸들의 사진을 카카오톡에 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 일이 있고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오빠를 보는게 편할 수가 없다. 난 무섭다. 오빠가 그 딸들을 예뻐하는게 사실 무섭다. 딸들이 걱정되는 마음까지 있다. 사실 성년이되고 나서도 그 친척오빠와 둘이서 밥을 먹고, 드라이브를 했던 적도 있다. 그 때도 그 오빠가 무섭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에게 그러지는 않겠지라고 믿고 싶고, 과거에 경험을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아무일 없던 듯이 잘 지내오던 나는 사실 괜찮지 않았다. 엄마와 고모의 사이가 틀어질까봐. 이 문제 때문에, 내가 그 문제를 발설했기 때문에 벌어지게 될 모든 불편한 상황이 싫었다. 내가 괜찮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다. 오늘은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친척들과의 단체카톡방이 있다. 거기에서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새해 인사를 하는데, 그 오빠도 새해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오빠의 예쁜딸이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을 보게 되었고, 또 불편함이 밀려왔다.


나는 이 기억, 이 문제를 깊이 묻어두고는 괜찮은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법적 공소시효 거의 끝자락에서 나는 이 문제가 여전히 불편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모든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오빠가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그때 불편했다고 말을 못했던 것. 그리고 그때 실수 였든 어쨌든 사과를 받고, 진정으로 자신이 했던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정말 이 문제를 더 이상 묵혀두고 싶지 않다. 내가 가족들을 다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니, 그 오빠가 그런 일을 자초했건 간에 어떤 비난도 무릅쓰고 이 일에 대한 나의 감정을 끝내고 싶다. 하지만 사과를 받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내가 그 오빠를 편하게 볼 수 있는 날은 아마도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난 후에, 장문의 카톡을 친척오빠에게 남겼다. 오빠는 바로 자기가 정말 미쳤었나보다며 연락이 왔다. 처음엔 이렇게 사과받기가 쉬운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빠는 불안한 듯이 계속 나에게 사과를 하며, 내 답변을 보챘다. 나는 사과해줘서 고맙단 말이나 예의상 하는 말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오빠가 했던 말은 가관이었다. 자기가 지금 깨어있어서 카톡을 봐서 다행이지, 와이프가 봤으면 많이 곤란할 뻔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화가 났다. 그 한마디로 모든 사과는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사과일 뿐이었다. 내 카톡이 당신을 곤란하게 한 게 아니라, 당신이 과거에 한 일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뻔한거지. 어릴 때 두려웠던 것도 그거다. 나만 닥치고 입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이 없는데,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불편한 일들이 벌어질거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내가 말을 해서 문제가 생기고, 불편한 일이 생겼더라고 해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의 억울했던 심정과 풀리지 않는 분을 풀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을 거다.